전체 글24 타이타닉 (가족, 안전불감증, 계급) 솔직히 말하면, 저는 타이타닉을 처음 봤을 때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가 기울어지는 순간, 계단을 잠근 문, 먼저 채워지는 구명보트. 같은 영화인데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영화가 됩니다. 타이타닉이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가족이라는 이름의 당연함, 그리고 후회타이타닉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잭과 로즈의 키스가 아닙니다. 배가 기울어지는 와중에 어린아이를 침대에 누이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 마지막 순간 서로를 꼭 껴안고 누운 노부부입니다. 이 장면들은 대사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더 오래 남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슬픈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장면이 왜.. 2026. 5. 9. 라이언 일병 구하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밀러대위, Earn this) 누군가 당신 곁에서 조용히 사라진 적 있습니까. 전우도, 동료도, 친구도 아닌 사람이 당신을 살리기 위해 쓰러졌다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감당했을까요.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 질문을 170분 동안 놓지 않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보다 다시 봤을 때 더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크린이 재현한 가장 가혹한 20분혹시 영화를 보다가 눈을 감은 적 있습니까. 저는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랬습니다. 함정의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총알이 쏟아지고, 바닷물이 붉게 물드는 장면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선택한 기법이 바로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입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란 삼각대 .. 2026. 5. 1. 죽은 시인의 사회 (웰튼아카데미, 카르페디엠, 질문) 솔직히 고백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감동적인 영화"로 끝냈습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이 멋있었고, 마지막 장면이 뭉클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영화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멋있는 영화라서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웰튼 아카데미가 학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1989년, 저는 학교에서 꽤 충격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되던 해였습니다. 전교조란 교육 민주화와 참교육을 목표로 교사들이 만든 노동조합으로, 당시 노태우 정권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약 1,500여 명의 교사를 강제 해직했습니다(출처: 한국민주주의연구소).저도 존경하던 선생님이 그렇게 학교에서 쫓겨나는 걸 지켜봤습니다. .. 2026. 4. 25. 에린 브로코비치 (실화배경, 우리동네, 줄리아로버츠)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냥 통쾌한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말발 좋고 기 죽지 않는 싱글맘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방 날리는 이야기. 그런데 나중에 다시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건 영화관에서 보고 잊어버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실화배경- 법도 배경도 없는 사람이 시스템에 부딪혔을 때에린 브로코비치는 2000년 개봉한 실화 기반의 법정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에린은 1993년 기준 이혼을 두 번 겪고,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실직 상태였습니다. 교통사고 소송에서도 패소한 뒤 변호사 에드 매즈리의 법률 사무소에 법률 보조로 들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변호사 자격 없이 소송 준비 업무를 지원하는 법률 보조란 역할로, 법적 권한은 없지만 자료 .. 2026. 4. 22.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현장 판단, 인적 요소, 선택) 오래전 겨울, 서울 출장을 마치고 내려오던 고속버스에서 운전하는 기사를 떠올렸습니다. 오후부터 내리던 눈이 해가지자 빠르게 쌓여가던 고속도로에서 버스 기사가 원래 가야하는 노선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승객들은 바로 웅성거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뉴스를 보니, 원래 가려던 구간에서 다중 추돌 사고가 났더군요. 영화 설리를 보면서 그 버스 기사 얼굴이 자꾸 겹쳤습니다. 현장에서 판단하는 사람은 언제나 욕먹을 가능성을 먼저 떠안는다는 사실이요.35초가 만든 차이, 그리고 현장 판단의 무게2009년 1월 15일, US 에어웨이즈 1549편은 라과디아 공항을 이륙한 직후 버드 스트라이크를 맞았습니다. 버드 스트라이크란 항공기 엔진이나 기체에 새가 충돌하는 사고를 말합니다. 이 경우 조류가 엔진 팬 블레이드에 .. 2026. 4. 21.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학도병, 양동작전, 생존자) 영화관을 나오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음료를 들고 밤거리를 걷는 제 모습이 갑자기 낯설어졌습니다. 2019년 개봉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1950년 인천상륙작전 직전,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 772명이 투입된 장사상륙작전을 바탕으로 한 실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창문만 바라봤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밤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열일곱살 학도병이 전선에 서야 했던 이유1950년 9월 13일 밤, LST 문산호가 영덕 장사리 해안을 향해 출항했습니다. LST란 전차상륙함(Landing Ship, Tank)을 의미하는 군용 선박으로, 해안에 직접 접안하여 병력과 장비를 상륙시키는 데 쓰입니다. 그 배에 탄.. 2026. 4. 20.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