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8 오토라는 남자 (까칠함, 상실, 공동체) 영화 《오토라는 남자》를 처음 틀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코미디 드라마라고 해서 가볍게 봤는데, 초반 10분 만에 표정이 굳어버렸습니다. 아내를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남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장면이 그토록 조용하고 담담하게 그려질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이렇게 표현하는 방식이 있구나 싶었고, 그게 오래 남았습니다.까칠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저도 처음엔 오토가 그냥 불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트에서 직원에게 따지고, 주차 라인을 조금만 넘어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 "저런 사람 꼭 있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미워지지가 않았습니다.사실 제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비슷한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늘 주차 문제로 화를 내시던 어르신이었는데.. 2026. 6. 20. 쉰들러 리스트 (침묵의 공범, 돈과 사람, 나무 상자) 지금까지 쉰들러를 영웅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두 번, 세 번 다시 보면서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전쟁의 혼란을 이용해 돈을 번 기회주의자였고, 나치당원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1,1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이 저를 계속 붙잡고 있습니다.침묵의 공범 — 우리는 정말 아무 책임이 없습니까?영화에서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유대인 대량학살을 일컫는 역사 용어로, 약 600만 명이 희생된 인류 최대의 비극 중 하나입니다. 영화는 그 학살이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 위에서 자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저는 이 대목이 유독 불편했습니다. 화면 속 .. 2026. 5. 31. 스파이 브릿지 (냉전의법정, 원칙의 힘, 협상 태도) 아무도 서고 싶지 않은 자리에 기꺼이 선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스파이 브릿지는 1957년 실화를 바탕으로,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고 냉전 한복판에서 포로 교환 협상을 이끈 제임스 B. 도너번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게 실화라고?" 하고 멈췄습니다.냉전의 법정, 그리고 침묵하는 공동체1957년 미국 뉴욕에서 소련 정보요원 루돌프 아벨이 체포됩니다. 재판은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고, 사형 선고는 이미 결론이 난 것처럼 분위기가 굳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보험 전문 변호사 도너번이 아벨의 국선 변호인으로 지명됩니다.여기서 국선 변호인(Public Defender)이란 피고인이 사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하거나 법원이 특별히 지정한 경우에 국가 또는 법원의 위임을 받아 변호를 맡는 .. 2026. 5. 24. 택시운전사 (소시민의 선택, 광주의 연대, 기억의 책임) 2017년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가장 넓은 관객층에게 전달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전에 뉴스 화면을 무심코 채널 돌렸던 일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는 분들께, 이 영화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소시민의 선택 — 겁쟁이가 영웅이 되는 순간영화의 가장 큰 힘은 주인공 김만섭(송강호)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해결하려고 광주행 손님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정치 의식도, 대단한 사명감도 없습니다. 그저 카드값과 딸의 학원비가 더 먼저인 사람입니다.제 경험상 이런 인물 설정이 오히려 더 깊이 박힙니다. 처음부터 용감한 영.. 2026. 5. 18. 타이타닉 (가족, 안전불감증, 계급) 솔직히 말하면, 저는 타이타닉을 처음 봤을 때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만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가 기울어지는 순간, 계단을 잠근 문, 먼저 채워지는 구명보트. 같은 영화인데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영화가 됩니다. 타이타닉이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가족이라는 이름의 당연함, 그리고 후회타이타닉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잭과 로즈의 키스가 아닙니다. 배가 기울어지는 와중에 어린아이를 침대에 누이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 마지막 순간 서로를 꼭 껴안고 누운 노부부입니다. 이 장면들은 대사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더 오래 남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슬픈 장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장면이 왜.. 2026. 5. 9. 라이언 일병 구하기 (노르망디 상륙작전, 밀러대위, Earn this) 누군가 당신 곁에서 조용히 사라진 적 있습니까. 전우도, 동료도, 친구도 아닌 사람이 당신을 살리기 위해 쓰러졌다면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감당했을까요. 1998년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그 질문을 170분 동안 놓지 않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보다 다시 봤을 때 더 오래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노르망디 상륙작전, 스크린이 재현한 가장 가혹한 20분혹시 영화를 보다가 눈을 감은 적 있습니까. 저는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랬습니다. 함정의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총알이 쏟아지고, 바닷물이 붉게 물드는 장면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선택한 기법이 바로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입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란 삼각대 .. 2026. 5. 1.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