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가장 넓은 관객층에게 전달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래전에 뉴스 화면을 무심코 채널 돌렸던 일이 떠올라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는 분들께, 이 영화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시민의 선택 — 겁쟁이가 영웅이 되는 순간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주인공 김만섭(송강호)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해결하려고 광주행 손님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정치 의식도, 대단한 사명감도 없습니다. 그저 카드값과 딸의 학원비가 더 먼저인 사람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인물 설정이 오히려 더 깊이 박힙니다. 처음부터 용감한 영웅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만섭처럼 두려움에 떨고, 도망치고 싶고, 가족 걱정에 발이 무거운 사람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나도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화 속 만섭의 심리적 전환을 영화 이론에서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고 부릅니다. 캐릭터 아크란 주인공이 서사 안에서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만섭의 경우 이 변화가 유독 설득력 있는 이유는 변화의 동력이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손님을 두고 왔다"는 직업적 양심과 부끄러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순천의 한 식당에서 국수를 먹다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대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관객이 흔들리는 건 그 침묵 속에서 가족을 향한 책임감,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가 한꺼번에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광주의 연대 — 영화가 복원한 평범한 영웅들
《택시운전사》가 기존 5·18 관련 영화들과 결이 다른 이유는 젊은 시위대가 아닌, 시장 아주머니·택시 기사·주유소 주인 같은 소시민들의 연대에 카메라를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실제 가족의 이야기가 겹쳤습니다. 광주에서 평생 반찬 가게를 운영하신 저희 이모는 1980년 5월, 스물다섯의 새댁으로 시장 상인들과 함께 수백 개의 주먹밥을 뭉쳤습니다. 굶주리는 청년들이 "내 자식 같아서"였다고 하셨습니다. 그 일로 계엄군에 연행되어 수십 년을 감시 속에 살았고, 지금도 밥을 지을 때면 손이 떨린다고 하십니다. 영화 속 주먹밥 장면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저희 작은아버지는 당시 시내버스 기사로, 총탄이 날아드는 도청 앞 광장에 버스를 몰고 들어간 분 중 한 명이었습니다. 버스 창문이 모두 깨지고 차체에 수십 발의 탄흔이 남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으셨습니다. 하지만 이후 평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렸습니다. PTSD란 극심한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뒤 그 기억이 반복적으로 침투해 일상생활을 무너뜨리는 심리적 외상 반응을 말합니다. 운전대만 잡아도 총성이 들렸다고 하셨고, 결국 좋아하던 운전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영화 속 택시 기사들의 활약이 단순한 드라마 장치가 아니라는 걸, 저는 직접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영화가 재현하는 5월 20일 금남로 차량 시위는 계엄군의 집단 발포 앞에서 민간 차량들이 인간 방패막이를 자처한 실제 사건입니다. 집단 발포(集團發砲)란 군이 특정 명령 하에 시민을 향해 일제히 총기를 발사하는 행위를 뜻하며, 이는 국제 인권법 기준에서 명백한 위반 행위에 해당합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당시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는 공식 인정된 숫자만 600명을 훌쩍 넘습니다(출처: 5·18기념재단).
영화가 보여주는 소시민 연대의 핵심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상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사선에 자원한 광주 택시 기사들의 차량 시위
- 총칼 앞에서도 주먹밥과 물을 나눠 준 시장 상인과 주부들
- 공짜로 기름을 채워 준 주유소 주인
- 치안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킨 시민들
이 장면들이 대단한 이유는 이들이 결과를 알고도 뛰어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과를 모르는 채로, 오직 지금 눈앞의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책임 — 이 영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
독일 공영 방송 ARD의 카메라맨이었던 위르겐 힌츠페터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광주의 참상을 필름에 담아 전 세계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은 계엄 당국의 언론 통제(Press Control) 아래 사실상 모든 보도 기능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언론 통제란 권력이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직접 검열하거나 차단해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힌츠페터의 필름이 없었다면 광주의 진실은 훨씬 더 오래 묻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고 가장 찜찜하게 남은 건 힌츠페터의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만섭은 개인사와 내면 변화가 풍부하게 그려지는 반면, 힌츠페터는 "위험을 무릅쓰는 기자"라는 설정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기록자로서의 윤리적 갈등이나 귀국 이후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담겼다면 영화의 깊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후반부 택시 추격 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감독 본인도 인터뷰에서 "내부 갈등이 많았다"고 밝혔는데, 솔직히 저도 그 장면에서는 잠깐 몰입이 깨졌습니다. 실제 역사는 그 추격 신 없이도 충분히 드라마틱합니다. 검문소를 빠져나와 홀로 국도를 달리는 장면으로 바로 이어졌다면 오히려 더 먹먹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2025년을 살아가는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하나입니다. 권력이 정보를 틀어쥐고, 폭력이 질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가해자의 해명이 더 크게 들릴 때, 우리는 과거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 폭력(State Violence)이란 국가 권력이 제도적·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자국민에게 가하는 조직적 폭력을 의미하며, 5·18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국제 학계에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5·18민주묘지).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에 갇히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보기 위한 기준점을 갖자는 뜻입니다.
《택시운전사》를 아직 보지 않은 분이라면, 거창한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봐도 됩니다. 만섭처럼 무심하게 시작해도 됩니다. 다만 다 보고 나서도 아무 감각이 없다면, 그때 비로소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면 됩니다. 저는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채널을 돌렸던 그날 저녁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부끄러움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저는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택시운전사_(영화)
https://www.518.org
https://www.518.org